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감정이 어떻게 실체를 낳는가?
인간에게 상상의 힘이 없었다면 150명 이상의 집단은 유지되기 힘들거라 사피엔스에서 말한다.
종교, 돈, 국가와 같은 실체하지 않는 허구의 것으로 그 임계치를 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감정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집단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야 말로 근시안적인 시스템이라는 나의 생각이 강화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 지위가 본심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현대 사회의 사회 구조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문장이었다.
아니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는 오히려 이런 말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이기 때문에 공감하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역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이 지위는 상당히 자유롭게 이동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부의 세속과 정신적 유산에 대해 말하며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지위를 고를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어느정도)
인지 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은 핵심 가치이다.
해결될 수 없는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이 인간 사회 성공의 핵심이라 말한다.
나는 이것이 개인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느끼는 사회와의 인지 부조화, 그 고통을 감내하는 동시에 우리 자아는 성장한다.
그것은 문제 해결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명확하게 짚어낼 수 없는 감정의 영역에서의 문제해결 능력.
과학은 무엇이 중요한지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팩트”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올바른 정답을 도출해낸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싶지 않다.
무엇이 정답인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뿐이다.
그 사람은 본인의 가치관으로서 설명하는 것일 뿐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소통에 문제가 있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교리를 넘어선 무언가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윤리를 담고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본 주의를 단순히 경제적 교리의 틀에 얽매여 있다는 생각을 던져버리게 한 대목이었다.
전쟁의 이익이 전만 못해진 데 비해,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 수익성이 좋아졌다
현대 사회에서의 필요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경험적으로 나는 필요악의 존재 이유를 느껴본 적이 없다.
필요악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윤리적인 관점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려는 다른 사람의 노력의 결과물일 뿐이다.
예로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일반적 성과를 낼 때 필요악이란 말을 많이 듣는 것 같다.
그들은 단지 표면적으로 쉽게 가치 판단 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집단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성 마약
사실 마약이라 한다면 단기적인 기분 좋음을 유지시켜 주는 생각이 든다.
부작용이 없다면 그것을 금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 생각은 과연 단기적인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단순한 “기분 좋음” 이라면 문제 해결에서의 가치 판단이 흐려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