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광기의 산물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이 그러한 일을 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그 속에서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꿈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좇는 일과 꿈을 품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단념하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희망할 수 있다. 아무것도 단념하기를 희망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희망도 품지 못한다.
불가능한 것과 꿈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단념’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단념할 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희망할 수 있다. 아무것도 단념하지 않으려는 자는 결국 불가능한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단념’이라는 말을 포기나 패배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오해한다. 하지만 단념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단념은 받아들이는 일이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꿈이 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끝내 불가능한 것을 좇게 된다.
조금이라도 전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 성과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
그렇다면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바로 ‘현재를 살아내는 힘’이라고 믿는다. 꿈을 꾸는 이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바로 오늘을 살아내는 용기다.
꿈은 본래 이루기 힘든 것이며, 그렇기에 더욱 가치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 꿈은 단지 현실과 괴리된 환상이 되고 만다. 오늘을 감당하지 못하는 꿈은 결국 불가능한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은 전진조차 결코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조그만 성과도 의미 있고, 하루를 잘 견디는 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 작은 걸음을 통해 우리는 결국 꿈과 가까워진다.
앞으로는 너를 슬픔에 빠트리는 일이 생길 때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떠올려라. 그것은 불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고상하게 견디는 것은 행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찾아온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도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예기치 못한 불운이 우리를 더 깊은 슬픔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럴 땐 그저 가만히 견뎌내야 한다. 고통을 감내하고, 묵묵히 버텨내는 것. 그것이 오히려 행복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각 사람에게 일어난 것은, 운명에 유익한 것으로 할당되었다.” 아우렐리우스가 쓴 ‘일어나다(symbainein)’에는 ‘잘 맞는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벽이나 피라미드의 네모난 돌이 조화롭게 맞아들어 가 있다고 장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우리에게 꼭 맞게 다듬어진 운명의 조각들이다. 피라미드를 이루는 돌처럼, 어느 하나 허투루 들어온 조각은 없다. 지금 겪는 아픔조차도, 언젠가 나를 완성시키는 한 조각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우렐리우스는 노트를 쓸 때 자신을 ‘너’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고, 나아가서는 물러지기 마련인 내적 대화를 타자와 대화할 때처럼 긴박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바라지 마라. 조금이라도 전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 성과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이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한, 협력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아우렐리우스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다른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가려 했던 사람을 다시 ‘접붙이기’해야 합니다. 그것은 형벌부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판단을 버려라. 그리하면 네가 피해를 보았따는 느낌도 사라진다. 피해를 보았다는 느낌이 사라지면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이 견디지 못할 만한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무지와 허영이 지혜보다 강력하다’라는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슬픔이 치유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일어난 일 자체로는 불행이 아닙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비운에 사로잡히거나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지 미래를 불안해하며 절망하는 일 없이 견디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칭찬받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제는 망각에 맡겨지고 말았는가. 또한 그들을 찬미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버렸는가.
모든 행위를생의 마지막 행위처럼 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