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싯다르타

notion image
 
“… 그렇다면 아트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으며, 그것의 영원한 심장은 어디에서 요동치고 있는가? 그것은 각자가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는 가장 내적이자 불멸의 것, 즉 바로 자기 자신의 자아속에서 고동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 자아, 이 가장 내적인 것, 이 궁극적인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자아는 무엇인가. 우리는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지니고 있지만, 세상은 ‘나’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외부의 것이 쉽게 파괴할 수 있는 우리의 자아는 과연 내면의 것인가? 내 안에 고동치고 있는 것, 쉽게 뒤바뀌는 이 것이 과연 나의 자아인가?
개인의 자아가 불안정한 이 사회에서, 사회는 확고한 자아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런 확고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자들을 배제한다. 나는 이것이 극단의 불행으로 자아가 파괴된 사람을 보고 비난할 목적을 가지는 것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나는 자아는 범아일여, 색즉시공의 마음과 같다고 믿는다. 그저 존재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을 스스로를 가장 잘 알게된 존재로 바라보고 싶다.
 
“… 이 모든 것은 속임수투성이이였고, 모든 것이 악취를, 모든 것이 지독한 거짓의 악취를 풍겼으며, 모든 것이 그럴싸하게 속여 마치 참뜻과 행봑과 아름다움이 있기라도 하는 것 처럼 믿게 하였으며, 모든 것이 부패하여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부패하여 있다는 것을 시인하려 들지 않았다. 세상은 쓴맛이 났다. 인생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세상은 악취 투성이다. 그럴싸한 믿음과 이데올로기, 그 중간에서 모든 것을 정의롭게 심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궁극적, 절대적 존재가 있으리란 믿음을 심고 우리는 살아간다. 이런 절대적 기준은 다수를 위한 선택으로, 정의를 위한 선택으로 보이게 하며, 인간의 삶에서의 딜레마적 문제를 마치 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선악을 구분지어 판단한다. 그렇게 우리는 떳떳한 삶을 살아가는 것 처럼 비춰지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들에게 묻고싶다. 본인의 삶은 스스로의 영혼에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돌맹이를 하나 물속에 던지면 밑바닥에 가라앚게 되겠지요. 싯다르타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계획을 세우면 바로 그렇게 되니요. 싯다르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사색하고, 단식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몸 하나를 까딱하지 않은채, 마치 물 속을 뚫고 내려가는 그 돌맹이 처럼 세상만사를 뚫고 해쳐 나가지요. 그는 이끌려 가면 이끌려가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놔두지요. 그의 목적이 그를 잡아 당기지요. 왜냐하면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느것도 자기영혼 속에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이오.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만사 본인의 뜻으로 흘러갈 수 없다는 지혜를 하루빨리 깨우치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원한다면, 단지 자아가 원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나를 잡아당기며 언젠가 이루어지라는 믿음으로, 그저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