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와 함께 행복하기2026-03-20

notion image
요즘은 어딜 가나 AI 이야기로 공간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AI가 모든 것을 대체한다고 믿지 않아요. 오히려 기술이 더 많은 것을 대신할수록, 우리가 왜 만들고 무엇을 담는지는 더 중요해진다고 믿어요. 그래서 AI 공포 마케팅과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반복해서 소비되는 지금의 분위기에 더 큰 피로를 느껴요.
기회주의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세상은 더 팍팍하고 혼란스러워지는 듯해요. 맹목적인 기술에 대한 욕망이 오히려 개발의 즐거움과 삶의 행복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글은 AI의 가능성을 부정하려는 글이라기 보단, 오히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치의 핵심은 더 선명해진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같은 믿음을 가진 분들에게는 응원을, 다른 믿음을 가진 분들에게는 하나의 관점을 전하고 싶어서 쓰게 됐어요.
 
notion image

AI 거품?

저는 AI 기술 자체가 거품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미 AI는 실제 생산성 향상을 만들어내고 있고, 분명한 효용도 있어요. 다만 지금 시장을 둘러싼 기대와 자본의 속도는, 그 실질적인 성과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고 느껴져요.
혹자는 GPU, 파운드리, 데이터센터에서 이미 수조 단위의 가치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거품을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해요. 하지만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면, 지금 부풀어 오른 것은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둘러싼 내러티브와 기대에 더 가까워 보여요.
 
작년(25년) 8월에 발표된 MIT 레포트를 보면, 현실은 시장의 열기와 조금 달라요. 기업들이 생성형 AI에 무려 300억에서 400억 달러를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95%가 비즈니스적인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통합형 AI 프로젝트 가운데 단 5%만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고, 대다수는 손익계산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인 상태라는 거죠.
“Despite $30-40 billion in enterprise spending on generative AI, 95% of organizations are seeing no business return. … Just 5% of integrated AI pilots are extracting millions in value, while the vast majority remain stuck with no measurable P&L impact.”
“엔터프라이즈가 생성형 AI에 300억~400억 달러를 지출했음에도, 조직의 95%는 비즈니스적인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 통합형 AI 파일럿 가운데 단 5%만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대다수 프로젝트는 손익계산서(P&L)에서 측정 가능한 영향 없이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같은 해 11월에 나온 맥킨지 리포트의 지적도 비슷해요. AI 도구 자체는 우리 주변에 흔해졌지만, 막상 대부분의 조직은 이를 실제 워크플로와 프로세스에 충분히 깊이 내재화하지 못해서 유의미한 전사 차원의 혜택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While AI tools are now commonplace, most organizations have not yet embedded them deeply enough into their workflows and processes to realize material enterprise-level benefits.”⁠
“AI 도구는 이제 흔해졌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여전히 워크플로와 프로세스에 이를 충분히 깊이 내재화하지 못해, 유의미한 전사 차원의 혜택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경고한 '순환 AI 거래'에 대한 심층 보도도 궤를 같이해요. 한 기업이 AI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그 스타트업이 받은 투자금으로 다시 첫 번째 기업의 클라우드와 칩을 구매하는 식의 구조를 꼬집었죠. 애초에 빅테크의 투자 자금이 아니었다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장부상의 허수 매출이라는 거예요. 외부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오는 '진짜 수요'가 아니라면, 이 화려한 클라우드 잔치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경고였어요.
 
notion image

계속 상승할까?

외부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오는 진짜 수요가 충분해진다면, 지금의 순환은 더 이상 버블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지금 시장을 떠받치는 힘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실수요보다 기대에 가까워 보여요. 특히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생성형 AI를 보며, 머지않아 전지전능한 범용 인공지능, AGI가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해요.
실제로 2024년 미국 대중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약 34%는 ChatGPT 같은 모델을 보고 AGI가 이미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AGI와 같은 매우 발전된 AI가 2~5년 안에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기대 역시 강하게 나타났어요. 시장의 열기만큼이나, 대중의 상상도 기술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는 셈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봐야 할 게 있어요. 지금 시장이 막대한 자본을 베팅한 대상은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기반 LLM이에요. 하지만 많은 석학들은 현재의 LLM을 본질적으로 ‘확률적 앵무새’라고 말해요. 지금의 LLM은 세계를 이해하는 지능이라기보다, 거대한 확률 위에서 가장 그럴듯한 다음 문장을 만들어내는 모델에 더 가까워요. 인과를 이해하고, 세계를 파악하고, 스스로 목적을 세워 일반적으로 사고하는 존재와는 성격이 전혀 달라요.
더 중요한 건, 정작 AGI를 향한 실제 연구의 방향은 이미 트랜스포머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장기기억, 에이전트성, 월드모델, 물리 세계와의 상호작용 같은 다른 축들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LLM 발전을 곧바로 AGI의 도래로 읽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기대인지를 보여줘요.
결국 지금의 상승을 끝까지 떠받치고 있는 것은 완성된 기술이라기보다, 그 기술 위에 먼저 올라탄 기대에 더 가까워 보여요. 그래서 저는 대중이 상상하는 미래와 실제 기술의 성격 사이의 간극이,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날 거라고 생각해요.
 
notion image

그럼에도,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AI를 과소평가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현재의 LLM은 AGI가 아니더라도, 이미 지식 노동의 속도와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어요. MIT 연구에서는 ChatGPT를 사용한 전문직 참가자들이 특정 글쓰기 과제를 평균 40% 더 빨리 끝냈고, 결과물의 품질도 18% 높아졌어요.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조사에서도 생성형 AI 사용자는 주당 근로시간의 5.4%, 40시간 근무 기준 약 2.2시간을 절약했다고 답했어요.
같은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이런 절감 시간을 바탕으로, ChatGPT 공개 이후 노동생산성이 최대 1.3%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어요. 다만 이 역시 잠재 효과에 가까운 수치이고, 절약한 시간이 낮은 가치의 업무나 여가로 흘러가면 실제 생산성 통계에는 덜 잡힐 수 있다는 단서도 함께 붙어요.
즉 AI는 인간의 자리를 통째로 대체하고 있다기보다, 인간이 ‘실행만으로’ 증명하던 가치를 빠르게 깎아내리고 있어요. 예전에는 무언가를 작동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큰 경쟁력이었지만, 이제는 그 위에서 무엇을 왜 만들 것인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보다 더 빨리 코드를 찍어내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더 정확하게 정의하고, 더 좋은 맥락을 설계하고,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능을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기능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이 더 중요해진 거예요.
이제 질문은 하나예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notion image

뭘 해야할까?

개발자의 단순 노동이었던 “코딩”행위는 이제 AI가 대신 해주고 있어요. 하지만 개발자의 본질적 업무를 대체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제 코드를 빠르게 짜고, 그럴듯한 기능을 붙이고, 화면을 작동하게 만드는 일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한 능력이 아니에요. 하지만 무엇을 만들지, 왜 만들어야 하는지, 누구의 어떤 문제와 감정을 건드릴지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에요.
우리는 원래 코드를 팔던 사람이 아니라, 코드를 통해 어떤 메시지와 경험을 만들던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실은 AI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아요. 달라진 것은 경쟁의 기준이에요. 예전에는 무언가를 작동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지만, 이제는 실행의 희소성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고 그만큼 제품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MVP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기능이 돌아가는지를 확인하는 단계를 넘어서, 사람들이 정말 머물고 싶어 하는지, 다시 찾고 싶어 하는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해요. 이제 필요한 것은 Minimum Viable Product를 넘어, Minimum Lovable Product에 더 가까운 질문이에요.
앞으로는 맥락의 밀도가 더 중요해질 거예요. 비슷한 기능은 누구나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어떤 문제를 어떤 태도로 풀어내는지는 쉽게 복제할 수 없어요. 사용자에게 닿는 문장 하나, 흐름 하나, 감정 하나, 배려 하나가 결국 제품의 가치를 만들게 될 거예요.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차가운 기능의 나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관점과 온도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 시대에 필요한 개발은 단순한 구현이 아니라 번역에 가까워질 거라고 믿어요. 사람의 마음과 문제를 읽고, 그것을 기술로 다정하게 번역해내는 일이에요. 저는 그 번역의 끝에는 결국 예술이 있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왜를 묻고, 우리의 메시지를 사람을 위한 다정한 가치로 번역해내는 일은 점점 더 예술의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어요. 기술의 맹목적인 질주 속에서 인간다움을 놓치지 않는 방법 역시, 결국 예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남는 것은 누가 더 깊이 이해했고 더 따뜻하게 담아냈는가일 거예요. 마지막에 남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이타성일 거라고 믿어요.